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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캉 25-09-20 11:21 55
당분간은 오랜만에 코비가 해군본부에서 업무를 보는 기간.
그렇기에 코비는 미캉을 좀 더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하필 미캉이 해군본부 소장으로써 본분을 다하기 위해 항해를 떠났을 줄이야.

"그, 그래도 오늘은 오시는 날이니까."

코비는 품 속에 있는 미캉의 비브르카드를 꺼내며 배시시 웃는다.
조금씩 꼼질거리며 미캉이 있는 방향을 향하는 카드는 미캉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주듯 온전한 모양이었다.
코비로서는 다행인 일. 혹시라도 다쳐서 온다면 미캉의 상처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아파할 그였다.

"일단, 당장 해야할 일부터!"

코비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두 손으로 양볼을 착착 쳤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해군본부 안의 집무실. 헤르메포가 검토한 문서들이 어느새 코비의 책상에 차곡히 올려져 있었다. 코비는 익숙한듯 자리잡고 앉아 간단히 필기할 빈 종이와 함께 펜을 들었다.

“이거는 이대로 결재해도 될 것 같고…”

이미 SWORD일 등으로 현안에 빠삭한 코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전결을 마친 서류들을 쌓아 올렸다.
더 상층부로 올라갈 안건들은 미리 분류하고 차후에 서류사송 담당에게 무리없이 넘겼다.

그 때 절친한 친구이자 부관인 헤르메포가 코비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코비 대령 님,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그럼..."

코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헤르메포를 따라 집무실을


와글와글


해군본부의 식사는 뷔페식.
아무래도 언제가 최후의 만찬이 될지 모르는 곳이기에 그런 거 아니냐는 추측이 돌긴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언제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헤르메포와 코비는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냈다.

"오늘도 주먹밥하고 버터감자냐? 안 질려?"
"그러는 헤르메포야말로 오늘도 스테이크네요."
"야, 나는 그래도 고기거든? 너 그걸로 충분한 거냐?"

코비는 헤르메포의 말에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간식거리를 집었다.
센베와 녹차. 코비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것을 헤르메포가 모를리 없었다. 평소에 자주 먹던 것이 아니니.
헤르메포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소장님 오는 날이지?"
"하하. 네. 잘 알고 계시네요?"
"그, 뭐... 평소에 잘 안 먹는 걸 덜고 있으니까...?"

평소와 다르게 당황한 듯한 헤르메포였지만 그 이유까지는 잘 모르는 코비는 그저 자신이 찍은 것이 맞아서 당황한 것으로 이해했다.
미캉을 남몰래 마음 속에 담았던 적이 있는 헤르메포에겐 매우 잘 된 일.
물론 지금은 깔끔히 마음을 접었다.
코비를 보며 짓는 미캉의 미소는 어느 때보다도 빛났으니까.

"저희는 내일 출항인데말이죠.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완전히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헤르메포는 코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팠던 둘은 자리를 잡자마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빠르게 접시를 비워냈다.

둘 다 한창 에너지를 쓸 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 * *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
오늘은 가프 중장이 없어서 코비 혼자 군함을 상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예전보다 훈련으로 인한 상처는 덜하지만 없을 수는 없었다.
마치 저온화상을 입듯, 지속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군함을 치고 있으니.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루피 씨를 잡으려면, 아직 부족해!'

[코비라면 해군 대장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코비 자신을 아직 못 믿겠으면, 내 안목을 믿어봐. 나 이래뵈도 사람 보는 눈이 있거든]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던 그의 머리 속에 잠시 따듯한 춘풍이 지나간다.
언젠가 코비가 워터세븐에서 루피를 만나고 나서. 미캉이 코비에게 한 말이었다.
거짓말은 해도 빈말은 절대 안하는 그녀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자신에게 해준 격려.
고된 훈련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을 일으키는 여러 순간 중 하나였다.

코비 자신도 모르게 떠올린 그녀의 얼굴에 잠시 미소짓는 그 때였다.

"코비!"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 코비가 그토록 기다리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미캉 씨!"

코비가 온종일 기다린 그녀였다.

"군함을 상대로 훈련하면서 무슨 생각하기에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비아냥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에 나오는 미소.
그녀는 본인이 귤과 닮았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코비는 미캉은 달콤하고 상큼한 귤을 닮았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미캉 씨 생각?"
"어머, 정말...!"

어두운 밤이어도 알 수 있는 미캉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코비는 미소지었다.
미캉은 코비에게 다가가 그를 제 두 팔 가득 껴안았다.

"!"

'방금까지 훈련을 해서 땀이 많이 났을텐데!'라고 말하는 코비의 뺨에 미캉은 입을 쪽 맞췄다.

"코비의 심장이 오늘도 힘차게 뛰었다는 증거인걸. 오히려 좋아."

코비는 잠시 코끝이 찡해졌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연인이라니. 아직도 믿을 수 없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코비는 미캉을 마주 안았다.

코비의 품에 둘러싸인 미캉은 며칠 간의 항해에서 비롯된 피로가 싹 가심을 느꼈다.
뭐, 과학적으로는 포옹할 때 나오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의 작용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지금 미캉 자신이 느끼고 있는, 흘러가면 다시 닿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었다.

미캉은 코비의 품에서 빼꼼 얼굴을 들어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았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나도 훈련 좀 하고 갈까?”

미캉의 말에 코비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에? 미캉 씨 지금까지 항해하고 왔는데, 피곤하지 않으세요?”
“이렇게 코비한테 안겨있으니까 그런 거 잘 모르겠는걸!”

그러니까 이제 그만 포옹 풀어달라는 미캉의 부탁을 잠시 못 들은 척 세게 껴안고는 천천히 그녀를 놔줘었다.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걱정마세요. 코비 대령 님.”

미캉은 장난스레 검지로 코비의 코끝을 톡톡 두드리곤 코비 옆에 있는 군함으로 발걸음 옮기고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제 등에 짊어진 정의가 해군 두 명의 열정으로 펄럭거렸다. 숨이 턱끝까지 찰 만큼 격한 움직임에도 그것이 바닥으로 착지할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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