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미캉 25-09-17 22:28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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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런 녀석이 '영웅'이라고 불리는 거지?“

그리드는 멀리서 지나가는 코비 대령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자기보다 후배. 본인과 같은 대령인 주제에 급성장의 아이콘으로 칭송받는 것도 짜증이 났고 무엇보다 가프 중장의 제자라는 그의 이력이 그를 더 화나게 했다.
이스트블루 한 구석에나 계속 처박혀 있을 것이지. 나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똑같이 했을 거라고. 운도 참 더럽게 좋은 자식.


그때였다.
그리드의 눈에 코비에게 다가가는 주황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보였다.
그런데 방금까지만 해도 미간에 주름이 가득했던 코비의 얼굴이 풀어지는 것이 아닌가.

"저거, 사내 연애라도 하나? 하, 참. 가지가지 한다."

주황빛의 여인과 같이 해맑게 웃는 코비가 그리드의 눈에 정말이지 거슬렸다.

"...저 얼굴에서 웃는 낯짝을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지?"

코비를 마주하며 웃는 여인을 바라보며 그리드는 한 가지 수를 떠올렸다.

"...저 여자. 뺏어버려?"

오호라.
그거 괜찮겠다.
저 낯짝이 어두워지는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강한 법.

"좋아…. 그럼, 정보를 모아야겠지?"

그리드는 결심한 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그리드는 자신의 정보원으로 여인의 정보를 하나씩 캐냈다.

"여차하면 내 지위라도 쓰지 뭐."

그리드는 귀족의 일원. 계속되는 부모의 간섭에 진절머리 났던 그리드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겠다며 해군으로 입대했다.
부모 따위 없어도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그였지만, 지금은 그따위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이 있는 사회적 무기를 전부 동원해서라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을 만큼 그리드는 코비가 싫었다.
아무한테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정말이지,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근데 이 여자…. 소장이었어?"

게다가 놀라운 점은 코비보다 연상이며 상사라는 점이었다. 자신과 동갑이었으니까. 거기에 '무명의 해군'의 주인공에 기초과학분석부 소장이라….

"아무리 해군본부가 인재가 없다지만 아무나 장성급으로 가져다 놓진 않겠지."

그리드는 정보원이 가져다준 프로필을 찬찬히 훑어보곤 탁자에 던져 놓았다.

"뭐, 얼굴이 나름 반반하긴 하지만…. 그거 말고는 평범하네. 성격도 물렁물렁해 보이고. 자주 가는 카페라…. 음."

그리드는 거기에서 우연인 척 미캉에게 접근하려는 작전을 세웠다. 나머지는 자신의 주특기인 임기응변이 있었으니까.
그리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여자 몇 정도는 적당히 장난처럼 양다리 정도는 기본으로 걸쳐봤던 경력이 있던 그였으니.

* * *

카페 달빛.

카페 달빛은 녹차가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다. 그
렇게 시끄럽지 않으면서 전통적인 차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어서 비교적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리드는 미캉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녹차 중에서도 세작이나 우전을 좋아한댔나? 취향은 나쁘지 않네."

그리드는 창가 2인석 테이블에 혼자 미캉이 앉아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미캉과 같은 테이블에 자연스레 합석할 생각이었기에 카페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곁눈질로 인원수를 세었다.

"지금 들어가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부담스럽지 않은 깔끔함을 장착한 그리드가 카페에 들어가니,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점원의 인사가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아, 그런데 지금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가요. 음, 저 여기 세작을 꼭 먹고 싶었는데, 뭐.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때였다. 그 모습을 본 미캉이 자리에서 일어나 점원과 그리드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시면, 제 앞자리에서 드셔도 되어요. 때마침 비었거든요."

그리드는 세상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미캉에게 다가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세작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인가 봐요."
"네, 요즘 도통 괜찮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여기가 그렇게 유명해서요."
"후회하지 않으실걸요?"
"기대되네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리드는 생각보다 잘 풀리는 일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미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저희 어디선가 뵌 적이 있나요? 왠지 그쪽이 익숙해서요."

그리드는 '나는 당신을 처음 보는데요?'라는 의도가 담긴 표정을 지어냈다.
그러고 보니 해군에서 발행한 수배서를 전부 외우고 있다고 했지. 해군 장교들도 외우고 있나?

"네? 저는 처음 뵈는데…."

미캉은 번뜩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음…. 아! 그리드 대령이죠?"
"어, 어떻게 저를 아시는 거죠?"
"언젠가 많은 해적을 연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거든요."
"제가 일하는 걸 보셨다면. 혹시, 당신도…?"
"음, 네. 저도 해군본부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오…."

그리드는 반가운 기색을 연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신도 방금 생각났다고 알리는 듯한 놀란 기색을 띠며 미캉을 바라보았다.

"혹시, 미캉 소장님 아니십니까?"
"어머. 날 알아요?"
"가끔 가프 중장님과 같이 다니시지 않습니까. 그 모습이 지금 생각났습니다. 소장님."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볼 일이 그리 많지 않았던 미캉은 이 상황이 멋쩍은 듯 검지로 얼굴을 긁적였다.

"지금은 해군 내가 아니니까. 굳이 소장이라고 부르시지 않아도 되어요."
"아니, 제가 어떻게…."

미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햇살처럼 미소 지었다.

"지금은 차를 같이 마실 친구를 만난 게 더 좋으니까."

미캉이 가진 에메랄드빛의 청량한 눈동자가 햇빛을 머금는 모습이 그리드의 눈에 비쳤다.
절대적인 존재에게 매혹당하듯 빠져들 수밖에 없는 빛깔의 녹안에 아무 말도 못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방금까지도 자신과 잘 대화하던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미캉은 그리드의 눈앞에 손을 좌우로 흔들며 주의를 끌었다.

"음? 왜 그러세요? 얼굴이 붉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미캉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 아무것도…. 여기가 창가라 그런가 봅니다. 하하."

미캉의 말에 아무렇게나 핑계를 댄 그리드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 지금, 설마 내가 감긴 건가?‘

그리드의 속마음 따위는 아무것도 모른 채, 차 맛을 논할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미캉은 그저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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