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켠의 이야기
미캉 25-09-30 22:31 77
그랜드라인을 항해하고 있는 배의 정비를 위해 코비는 어느 가을 섬에 정박했다.
작은 항구에 정박했음에도 로키포트의 영웅이 섬을 방문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간 듯하다.

“음, 곤란한데….”

시장 안을 걷고 있는 코비 주위에 많은 인파가 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눈망울을 빛내며 벽 같은 곳 뒤에서 코비를 바라보는 소녀들도, 부러움의 감정을 비치며 코비를 바라보는 소년도, 아들을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웃고 있는 중년의 사람들도 있었다.

“엇.”

그런 사람 중에서 코비의 두 눈에 띈 건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짐을 한 보따리 들고 천천히 걷고 있는 노년의 부부였다.
 코비는 두 사람이 놀라지 않게 다가가 묵례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아이, 고맙구려. 우리 영감이 들기에 무거웠는데.”

코비의 제안에 느긋한 미소를 띠며 반기는 할머니와 아직은 거뜬하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슬며시 코비에게 짐을 넘기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코비는 자신의 제안이 민폐가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코비의 질문에 할머니는 작은 언덕 중턱에 있는 작은 갈색 지붕의 집을 가리켰다.

“저기 언덕 중턱에 있는 집. 보이누?”
“네! 잘 보입니다. 가시죠.”

코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느릿한 발걸음에 맞춰갔다.
코비에게 짐을 맡긴 노부부는 손을 꼭 잡고 두런두런 얘기를 시작했다.

“어디서 본 청년 같은데….”
“에잇. 할멈. 그거잖아…. 그….”
“저 청년이 해군인 건 나도 알아요. 영감.”
“아니, 그…. 신문에 나왔잖여. 로키포트 때, 시민들을 구한 영웅.”
“아~ 저 잘생긴 청년이~?”


노부부가 코비에게 안 들리게 한다고 나름 작게 목소리를 낮춘 것 같지만 견문색이 특기인 코비는 전부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귀가 붉어졌지만, 자신들의 얘기를 듣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불쾌할 것이기에 코비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한창때는 나도 꽤 생겼었는데~”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말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다소 질투가 어려있는 것 같았다.

“아휴, 당신은 지금도 준수해요.”
“그래?”
“나는요?”
“당신이야…. 지금도 여전히 곱고 예쁘지.”

노부부의 말이 끝나자, 코비의 마음 한켠에서 귤빛의 제 연인이 떠올랐다.

‘나도…. 이렇게 미캉 씨하고 같이 늙어갈 수 있을까?’

미캉을 떠올리며 피어오르는 미소와 함께 이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것도 본인의 사명임을 다시 마음에 되새기며 보따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총각, 그거 많이 무겁지? 교대해 줄까?”
“아닙니다. 저 이래 보여도 거뜬합니다!”
“허허, 그래? 대단하구먼.”
“네, 혹시라도 제가 정말 힘들어지면 그때만 조금...”

코비는 자신을 걱정하는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며 다소 너스레를 떨었다.

“거 참. 밝은 총각일세. 괜찮다면 우리 손녀를 짝지어 주고 싶을 정도야~.”
“괘, 괜찮습니다!”
“뭐?! 우리 손녀가 얼마나 예쁜데! 얼굴도 안 보고!”
“그, 그게 아니라요. 이미….”

얼굴이 새빨개지며 열을 내는 코비의 얼굴을 보고 노부부는 이유를 짐작하고 이해했다.

“그럼, 그 처자 사진 있어?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제 남편이 코비에게 건넨 말에 할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소녀처럼 눈을 빛냈다.
코비는 바지 주머니에 넣은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 그 안에 있는 미캉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음….”

노부부는 멀리서 사진의 미캉과 코비를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렇죠, 영감?”
“뭐, 그러네.”

할아버지는 자기 손녀가 조금 더 예쁘다는 말과 함께 사진에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스레 코비에게 돌려주었다.

“근데, 어떻게 만나게 된 거누?”
“그게요...”

한때 연애소설을 즐겨보던 예전이 떠오른 할머니가 조심스레 물어본 말에 코비는 노부부에게 잠깐의 즐거운 라디오가 되어 주었다.
노부부의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면서, 두 사람이 연인이 될 때까지는 다 마저 말해 달라며 부탁하는 통에 코비의 복귀가 늦어질 뻔한 건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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