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은 마왕님을 사랑해_ 최종화
미캉 26-07-22 06:54 28
인간계를 만든 자의 무기였다고 전승된 명검 「세르빈」과 함께 신들의 장난으로 소멸할 뻔한 인간계를 구한 용사 코비.
그는 요즘 포드 국, 아니 인간계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물이었다.
춘풍이 불 듯한 분홍빛 머리결과 번듯하게 생긴 얼굴.
그리고 마법뿐아니라 검술에도 능한 영웅답게 탄탄한 몸. 어느 나라의 영애가 눈독 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휴…”

영애들의 구애에 지친 코비를 루미나스 왕녀가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하겠네요. 코비의 마음에는 마왕 님이 살고 있는데!“
“윽….”

핵심을 찔린 코비는 차마 아무말 하지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덕분에 붉어진 귀끝이 루미나스의 눈에 더 잘 보였다.

“마왕 님 정말 좋아하나봐요.”
“…”
"내가 보기엔 말이죠. 마왕님도 분명 코비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코비가 관련된 일에는 뭐랄까... 엄청 유하다는 느낌이랄까....“
“제가 감히 제 마음을 말해도 되는 걸까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꼭 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난.”

루미나스의 말을 듣던 코비는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맙다고 말하며 예를 올렸다.
 코비의 뒤통수가 작은 점처럼 멀어질 때쯤 루미나스는 마음 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사실 루미나스는 자신을 구하러 왔던 용사 코비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강함뿐만 아니라 예의 바르고 상냥한 코비의 성품에 끌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코비의 눈은 언제나 자신의 친구였던 미캉을, 현 마계를 다스리고 있는 마왕을 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올곧았으니
.
“마왕님이라면 알고 있겠지?”

얼마 전 인간계를 구하는 일에 제 몫을 톡톡히 해냈지만, 그럼에도 용사라는 칭호를 얻게 된 코비나 자신의 친구이며 마왕인 미캉 만큼 더 강해지고 싶었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의 성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언젠가 어깨를 나란히 할 그날을 위해.





코비는 미캉이 준 보석에 빌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곳을 데려가 달라고. 그에 응답하듯 보석은 따듯한 빛을 내며 코비를 감쌌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마계에 한 개밖에 없다는, 마왕이 직접 관리하는 벚나무 앞이었다.

“와….”

언제봐도 경이로운 고목이었다. 진줏빛으로 빛나는 꽃잎들이 마치 그녀의 기품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미캉 같아서, 코비도 이 나무가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처럼 감탄하며 벚나무에 한눈팔 무렵.
뒤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코비는 뒤돌아 그녀에게 목례를 올렸다.

"그 보석을 쓸 곳이 여기밖에 없던가, 너는."
"아, 그. 그게…"

미캉의 질문에 코비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랐다. 당신이 보고 싶어서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그저.

"그러니까. 이 벚나무가… 좋아서."

이렇게 대답했다. 거짓은 아니니까, 그나마 나으려나. 미캉은 코비의 눈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

무사히 잘 넘긴 것 같아 코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근데 마왕님은 왜 이 나무를 좋아하시나요?"
"…"

미캉의 무응답에 코비는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그녀의 예민한 것을 건드린 건가? 그럴 마음은 아니었는데.
코비가 사과하려는 그 순간 미캉이 입을 열었다.

"'그'라면?"
"오래전 내가, 나를 사랑한 자. 그리고 중간계의 창조주."
"…!" 

그러니까 이 나무는 미캉과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의 추억이 담긴 장소구나. 지금까지 이렇게 소중히하는 걸 보면. 아마도.

"외람된 질문이지만, 지금도 그분을 사랑하고 계시나요?."
"그래."
"이미 예전에 돌아가셨는데도요?"
"그래."

미캉의 단호한 긍정에 코비의 가슴 한편이 찌르르 아파왔다.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도 지금 느끼는 슬픔도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코비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어떤 분이셨어요?"
"상냥한 사람이었지. 마계의 독한 마기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천계에 발을 디딜 수 없는 그들을 보며 마음 아파할 만큼."
"…그래서 중간계를 만드신 건가요?"
"그래,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지. 그 혼의 일부가 「세르빈」에 있더군 여전히."
"!"

미캉의 말에 코비는 바로 「세르빈」을 소환하였다.
세르빈을 그녀에게 바칠 생각이었지만 코비의 의중을 눈치챈 미캉은 고개를 저었다.

"「세르빈」은 너를 선택했다. 그리고, 같은 혼끼리 있는 것이 더 안정적이니. 그러지 마."
“네?”
“넌 ‘그’의 환생이니까.”

코비는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창조주의 환생이라는 말인가? 그는 두 눈을 끔뻑거리며 미캉을 바라보았다.
그건 마치 ‘제가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미캉은 코비를 잠시 눈에 담다가 흩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언젠가처럼 하얀 진줏빛이었던 꽃잎이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와….”

코비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다가 자연스레 미캉을 바라보았다.
미캉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자연스레 살랑거렸고, 자신이 반했던 상냥한 빛의 녹안은 그리움으로 물들여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런 미캉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도 되는 걸까. 괜히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녀를 배려하는 마음만큼 좋아하는 마음도 컸다. 이대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이는 얼굴이군. 정말로.”
“-!”

코비는 미캉의 말에 얼굴이 확 붉게 달아올랐다. 누가 봐도 당황함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 알고 계셨습니까?”
“숨길 생각이 없는 거 아니었나?”

코비는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붕붕 내저으며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만약에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한다면 멋지게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지금이 자신의 마음을 당당히 전할 기회라는 직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코비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뒤로하고 미캉 만을 두 눈에 담았다.

“마왕님. 전, 저는….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제 마음속에는 당신만이 가득해요.”
“...내가 너를 ‘그 사람’의 환생으로 보게 되도 말이냐.”

고비는 미캉의 말에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미캉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난 그럴 생각 없다. 너는 ‘그’의 환생일 뿐. 다른 사람이기에.”
“마왕님….”
“코비.”
“...!”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듣는 자신의 이름은. 코비의 코끝이 찡해져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때.
미캉이 고개를 돌려 그에게 등을 보였다. 그녀의 길쭉한 귀 끝이 붉어 보이는 건 코비의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불러도 괜찮다.”
“네?”

“넌, 나를 그런 무거운 것으로 부르지 마라.”
미캉의 말을 고민하던 코비는 답을 찾곤 환하게 웃었다.
어느새 두 사람 곁을 흩날리는 벚꽃잎이 분홍빛과 주황빛을 오묘하게 띠고 있었다.
미캉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정말이지 몇만 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말 좋아합니다. 미캉 씨.”


 그녀의 마음이 가벼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미캉은 다시 견디기로 했다. 언젠가 끝이 올 것을 알면서도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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