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은 마왕님을 사랑해 3화
미캉 26-06-30 20:12 72
”푸하하. 너 진짜 가르치는 맛이 있구만?“
”헉, 헉….“

오늘도 어김없이 가프와 코비가 한판을 겨루고 있었다. 물론 가프에겐 스트레칭 정도의 준비운동이지만, 코비에겐 그의 마기를 담아 내지르는 주먹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이었다. 가프는 맨 주먹을 코비는 검에 신성력에 마나 오러를 두르고 있음에도 후폭풍이 불어대는 통에 훈련소가 매일 같이 망가지고 있었다.

”넌 오늘도 간단간당하네. 잠깐만 쉴까?“

가프가 바위에 책상다리를 하며 앉고 나서야 코비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진정시키자 흩어진 마나가 제자리로 돌아와 코비의 몸을 회복시켰다.

”오. 인간치곤 꽤 잘 하는데?“
”하하. 그런가요. 전 그냥 마왕님의 서적을 보고 나서 몇 번 따라하다 보니 이게 더 효율적이더라구요. 물론 아직 전 부족하지만.“

”그러냐? 난 그런 섬세한 거엔 영 말짱 꽝이란 말이지?“

호탕한 웃음 속에 피어나는 엄청난 마기의 압력에 코비는 잠시 몸을 떨었다. 마왕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몸에 새긴 감각이 절로 곤두서는 기분이랄까.

”근데…. 마왕님은 얼마나 오래 사셨는지 아시나요?“

“글쎄. 근데 까마득하게 산 건 맞을 거다.”인간이 속한 중간계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하던 마족이니 그렇겠지. 왠지 침울해하는 코비의 얼굴을 가프가 놓치지 않았다. 믿기진 않지만, 오랜 관록으로 봤을 땐 그것만이 사실이었다.
“너 엄청난 연상이 취향이구나?”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코비답지 않게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서며 아니라고 외친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치 원래 피부색이 사과색인 사람처럼. 가프는 그 모습을 근거 삼아 자신의 직감이 맞은 것에 즐거워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코비는 낮의 훈련이 끝나곤 밤에는 미캉의 서재로 가서 여러 책을 독파했다. 지식의 객관성은 비슷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시선이 있었다. 인간은 마나를 에너지의 종류로 보지만 마족은 마나를 작은 생명체로 여긴다는 것이다. 둘 다 장단점이 확실한 방법이라서 어느 쪽이 옳다고 결론지을 수 없으나, 적어도 코비에겐 마족의 방식이 꽤 잘 맞았다.

“우리는 마나를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 같고 여기는….”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있군.”
“!”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코비는 화들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미캉이 있었다.

“내 기척조차 느끼지 못 한 거면 아직 멀었군.”
“윽….”

그건 당신이 너무 넘사벽으로 강해서 그런 거라고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굳이 뛰어넘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적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녀가 관심을 가질 정도는 되길 바라고 있던 그였다.

“...”

강해져서 많은 사람을 지키겠다는 신념에 사적인 감정이 한 스푼 얹어진 코비는 마음이 영 편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기사가 되기 위한 자의 올바른 마음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코비를 응시했던 미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망설이는 거지? 네 마나가 일렁이고 있군.”
“아….”

코비는 마나로 그런 걸 알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적당히 솔직히 털어놓았다. 어차피 거짓말은 소질에 없고.

“강해지기 위한 길에 생긴 이 마음이 제가 배웠던 것과는 거리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강한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나무는 의외로 바람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것이라지.”

미캉의 말에 코비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 않아. 너 자신에게.”

미캉은 몸을 돌려 원래부터 없던 사람처럼 안개같이 사라졌다. 코비는 그녀가 있던 곳을 계속 바라보았다. 분명 다른 사람 같으면 기사의 마음가짐에 삿된 마음 품지 말라며 자신을 나무랐을 텐데. 그녀에게 위로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무시할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자신이 평생 살아오면서 위로받았던 적이 있던가. 내가 해준 적이 많았던 것 같은데. 왠지 모를 울컥함에 코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코비는 18세의 나이에 비해 강한 기사임에는 아무도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계에 오기 전부터 유효한 사실이었으나, 마계에 온 지 한 달 동안 가프에게 목숨을 건 훈련을 계속 받아온 결과, 순식간에 오러와 마나 모두 그랜드 마스터급으로 성장해버렸다. 돌아가면 포드 국 이래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가 될 것이 자명했다.

총사령관 가프는 아득히 강한 마왕을 빼면 마계에선 1인자로 통하는 마족이었다. 그런 그가 요즘에는 긴장이라는 걸 할 때가 가끔 벌어지기 시작했다.

“코비. 내 후임할래?”
“자,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원래는 내 손자 녀석을 앉히고 싶었는데, 사고만 일으키고 말이야. 물론 하나같이 중대한 사건이라 마음에 들지만! 푸하하.”
“하하….”

‘가프 씨. 그거 괜찮은 건가요?’ 라는 말이 혀끝까지 차오른 코비였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언젠가 훈련하며 봤던 가프의 손자 루피는 비록 마계의 사고뭉치였지만 악한 마족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롭게 싸우는 모습에 좀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인간계 기사에서 잘리면 나한테 와. 더 빡세게 굴려줄테니.”

꽤나 친해진 두 사람. 이젠 사람이 봤을 땐 스승과 제자정도의 사이였다.
그 모습을 미캉이 아주 멀리서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가프조차 인식할 수 없는 거리이기에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에 긴 머리의 끝단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눈을 감으며 일상의 평온함을 즐기던 미캉이었으나 갑자기 머리 속에 바로 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중단할 수 없었다. 상대방이 마계를 창조한 마신이기에.

[미캉, 요즘 다시 그 녀석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그렇습니까. 질리지도 않고.”
[본인 세계가 없는 신들에겐 중간계는 좋은 먹잇감이잖니.]
“….”
[우연인지. 운명인지]

마신의 말에 미캉은 다시 코비를 바라보았다.

“그가 만든 세계입니다.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요.”
[….]
“그것을 위해 모든 환생의 기회를 이 삶에 묶었습니다.”
[하지만 미캉….]
“그래도 그 덕분에 어떤 모습이든 알아볼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렇구나. 다른 일이 생기면 다시 부르마]
“감사합니다.”

신은 마계, 중간계, 천계 등이 존재하는 3차원보다 높은 차원에서 사는 존재이다. 신격은 두가지로 나뉜다. 세계를 창조한 신과 그렇지 못 한 신. 그리고 또 중에는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것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세계를 창조하는 것보단 쉬우니까.

“다시 「세르빈」이 필요해.”

미캉이 허공에 손을 슥 그으니 복잡한 마법진과 함께 여러 형태의 글자와 그림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반복하며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녀가 특별히 기억을 ‘책갈피’한 마법이었다.

“흠.”

몇 만 년쯤 되는 기억들을 뒤져야했기에, 오랜만에 미캉의 오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미나스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하늘은 포드 국에서 봤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왠지 마계의 하늘은 우리하고 다를 줄 알았는데.”

루미나스는 자신이 배웠던 것과 다르게 친절한 마족들. 더 나아가 인간과 마족은 그저 다른 종족인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잠시 사색에 잠겨있는 그녀의 옆에 성의 주인이 소리 없이 발을 사뿐 내디뎠다.

“아. 마왕님.”

루미나스는 익숙한 듯 놀라지 않고 그녀를 맞이했다.

“놀라지 않는구나.”
“헤헤. 제가 놀라길 바란 거예요?”
“...별생각 없었다.”

무표정으로 자신을 대하지만 그 속마음은 자신이 마주했던 사람 중 상냥했던 존재임을 루미나스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루미나스.”
“네.”
“포드 국 성에 볼일이 생겼다.”

왕궁 마법사들이 몇 겹으로 친 결계를 아무런 저항도 없이 다니는, 차원이 다르게 강한 그녀를 보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라왔고, 어릴 때부터 노력했지만 자신의 성별, 신분이 자신의 꿈을 막는 것이 너무나도 견딜 수 없었다.

“하긴. 저 여기 오래 있었죠.”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했지만, 아직은 조금 더 있고 싶은 루미나스는 자신도 모르게 아쉬운 말이 나와버렸다.

“그런 의미가 아냐. 원한다면 평생 이곳에 있어도 된다.”
“그럼?”
“포드 국 성의 지하 중앙쯤에 봉인된 장소가 있지?”

루미나스는 지금은 돌아가신, 언젠가 어머니가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지하 깊숙한 곳에 봉인된 장소가 있는데, 그곳을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왕족뿐이라는 신기한 이야기. 분명 자신이 찾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잔뜩 실망했던 일도 생각났다.

“그런 곳이 진짜 성에 있는 거예요? 혹시 그곳에 들어갈 때 제가 필요한 건가요?”

루미나스의 말에 미캉은 고개를 끄덕였다.

“와... 마왕님이 힘으로 안 되는 것도 있는 게 신기해요.”

예상하지 못 한 말에 미캉은 잠시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사실은 그녀가 못 할 것도 없지만 굳이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성을 부수고 싶지 않다는 말은 마왕은 굳이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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