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은 마왕님을 사랑해 4화
미캉 26-07-05 21:22 43
훈련장에서 검을 휘두르며 훈련하는 코비는 어제 루미나스가 해준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왕 님이 말한 게 사실일까?“

인간계를 포함한 중간계를 보호하기 위해선 포드 국 성 지하에 있는 ‘보물’을 꺼내기 위해 왕족의 직계인 루미나스를 데려가야한다는 이야기를 왕녀에게 전해 듣고 코비는 고민에 빠졌다. 중간계를 보호한다니. 누구로부터? 갑자기 자신이 여태껏 했던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진 규모에 코비는 어안이 벙벙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마계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직접 마왕과 마족들을 접해보니, 의외로 자신들의 세계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코비의 머리 속에 스쳐간 생각이 하나 있었다.

”마계의 왕이 왜 중간계를 신경 쓰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코비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일단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쉬기로 했다.





코비는 솔직히 성밖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왠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돌아다녔가 걸리면 마왕이 크게 화낼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한 ‘마음대로 다녀도 되는 범위’가 성 내부라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왕 성은 왠지 탐험하는 공간 같아서 그렇게 답답함은 몰랐다. 아직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니까. 그렇게 찾아낸 몇몇 공간 중에서 가장 그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첫날에 갔었던 마왕의 정원이었다.

"여기는 언제봐도...신기해.”

매일 바뀌는 꽃을 사이에서도 그날 봤던 진주빛 벚꽃나무는 바뀌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코비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리고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 같은, 평소에도 꽃을 잘 가까이 하지 않는 그인데도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 만났던 마족들도 이 나무만큼은 자신만이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왜 그럴까?’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했던 코비는 호기심에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더니 진주빛의 새햐안 빛을 내던 나무가 갑자기 연분홍 빛을 은은하게 사방에 반사했다.

“?”

그 모습이 신기한 코비가 나무를 만질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서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의 굵은 가지와 나무 기둥을 활용하여 미캉이 한낮의 쾌적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침대 같은 곳이 아님에도 편해 보이는 모습이 한두 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듯했다. 성안임에도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미캉의 주황빛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건드리고 갔다.

“...예쁘시다.”

코비가 그 말을 중얼거리고 보니 예쁘다는 말보단 아름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대리석 조각품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가 훨씬 제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첫날에도 그랬
지. 지금도 미캉을 처음 만난 그 순간이 떠올랐다.

“...”

온몸에 밴 기품과 함께 그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는 에메랄드빛 눈동자. 그런 사람이 마왕이라는 사실에 잠시 놀라긴 했다. 하지만 그 당혹감은 잠깐뿐이었다. 마족에 대한 오해가 풀리면서 점점 더 그녀를 죄책감 없이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아, 혹시라도 방해될 수도 있으니까 이만 가자.’

혹시라도 조심조심 소릴 죽이며 코비가 나무로부터 멀어지자, 연분홍빛을 띠었던 나무가 다시 하얀 진줏빛으로 빛났다. 빨리 벗어날 생각에 코비는 그 장면을 보지는 못하였다.





눈을 감고 있던 미캉은 눈을 조용히 떴다. 그리곤 코비가 발길을 돌려 정원을 나려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 고양이 같은 귀여운 발걸음은 자신을 배려한 것이겠지. 미캉은 잠깐 입꼬리를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저 아이는 그의 환생일 뿐이야.’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가로젓던 미캉은 갑자기 십여 년 전에 봤던 어릴 때의 그가 생각나 다시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누나는 어디에서 왔어요? 왠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환생한 ‘그’를 알아본 미캉은 옅게 미소 지었다. 아직 꼬마였던 코비의 눈에는 그 모습까진 보이진 않았겠지만. 정황을 보아하니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작은 도움을 주곤 발길을 돌렸었다.

“이번이 513번째 환생이었던가.”

자신의 나이는 어느 순간 잊어버렸지만, 자신이 사랑하던 그가 환생한 횟수는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봐도 그의 영혼은 자신의 눈에 사랑스러웠으니까.
이번에 환생한 그는 어느 환생체 중 재능도 노력도 이미 보통의 개체를 웃돌았다. 마신이 언질 준 ‘중간계의 위기’를 어떻게든 자신이 막아보려고 때맞춰 그렇게 환생한 걸까? 그건 신도 모르는 일이기에 마신이 가까이 있으나,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추측으로만 남겼다.

“언제까지나 위기 없는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었으면 했는데.”

이번의 그는 적어도 ‘평범’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아, 미캉은 아주 조금 서글퍼져 다시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대었다. 그때 총 집사가 나무 아래로 조심히 나타나자, 미캉은 마왕답게 그의 기척을 눈치채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음을 가다듬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마왕 님. 루미나스 님께서 만나고자 하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결심이 선 것인가. 미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곧 간다고 해.”
“알겠습니다.”





곧 마왕이 온다는 총 집사의 말을 듣고 루미나스는 자신의 방 한쪽에 있는 차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곤 미캉이 좋아할 것 같은, 그녀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홍차를 우려내었다.

“예전에는 다 누군가가 해줬는데.”

미캉이 루미나스에게 포드 국 성에서 했던 것처럼 마계의 사용인에게 시중을 부탁해도 된다고 하였으나, 루미나스는 그 정도의 염치는 있었다. 미캉의 말로는 자신이 손님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기사 코비입니다.”
“아, 들어와요!”

코비는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와 간단하게 목례로 예의를 갖추었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나요?”
“헤헤. 얼마 전에 마왕 님이 말해줬던 거. 고민은 충분히 했으니까, 답을 드려야죠. 근데 아무래도 코비도 같이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코비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미나스가 안내한 자리에 앉으니 향긋한 홍차 향이 올라왔다. 코비는 그렇게 차를 좋하지 않지만, 일단 귀족이긴 하니까 아예 모르지 않는다. 그런 코비가 맡아도 정말 좋은 잎에 그에 맞는 온도에서 잘 우려낸 홍차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때, 정말로 조용한 누군가의 기운이 피부로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왕인 미캉임이 틀림없으니까.

“루미나스.”
“아, 오셨어요?”

코비와 루미나스 앞에 나타난 미캉은 루미나스 맞은 편에 놓인 찻잔으로 그곳이 자신의 자리임을 알고 앉았다. 사실 무엇을 주든지 미캉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괜스레 긴장되는 루미나스였다. 미캉은 한 번 더 차를 홀짝인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할 말이 뭐지, 루미나스.”

미캉의 말에 코비도 루미나스를 바라보았다. 루미나스는 잠시 숨을 깊게 쉬곤 두 사람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어 손에 땀이 났다.

“저, 갈게요. 포드 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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