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은 마왕님을 사랑해 (2화)
미캉 26-06-26 21:49 38
코비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왕녀를 억지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기에, 일단 마왕 성에 머무르기로 했다. 마왕 성은 의외로 자기 집만큼 편하고 왕궁보다 쾌적했다. 루미나스의 말대로 성 내의 서재는 없는 책이 없었다.

“이 책이 정말 실제로 있다니!”

인간계에서는 위험성에 따라 ‘금서’로 지정된 것도 있는데, 그런 종류의 책들이 책장 여러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번역 마법만 쓰면 읽는 것에 지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코비는 독서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일반인에게는 위험하지만 오러 마스터 급인 그에겐 강해지는 데에 필요한 요소들뿐이었다.

“이건 무슨 말이지…?”

오랜만에 코비의 독서에 난관이 찾아왔다. 턱을 괴고 고민에 빠져 한참을 생각할 무렵,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도 모르는 채.

“마나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생각해.”

코비는 목소리의 출처로 고개를 돌리자, 마왕이 그의 앞에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없었는데,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코비는 굉장히 당황하여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넘어진 의자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마, 마왕.”
“...”

코비는 넘어진 의사 소리가 머쓱하여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웠다.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마왕의 시선에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 궁금했던 것이 생각나 입을 열었다.

“...호, 혹시 이름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미캉. 고대어로 ‘귤’이라는 뜻.
“아….”

오렌지 같은 고운 머릿결과 에메랄드빛 녹안을 보니 코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외모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행위는 코비에겐 옳지 않은 것이었다.

“고, 고대어군요. 마족들은 오래 사니까 이곳의 고대어는 제가 사는 곳과는 매우 다르겠죠?”

미캉은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인간계가 만들어지기도 전의 단어이니. 그럴지도.”

코비는 미캉의 입에서 흘러나온, 예상치도 못 한 아득한 시간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마계는 훨씬 전에 있었나요?”

미캉은 코비를 바라보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신들은 원래 마계와 천계만을 만들었으나, 어떤 바보가 마기에 못 버티는 자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신들의 마법을 훔쳐 ‘중간계’라는 걸을 만들었다.”

갑자기 아득한 차원의 이야기에 코비는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생각보다 많이 놀라지 않네.”
“아니오. 저 지금 엄청나게 놀라고 있습니다.”

미캉이 자신의 갈 길을 가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코비는 그녀를 다급하게 불렀다.

“저는 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의 외침에 그녀는 코비를 지긋이 바라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표정이지만 누가 봐도 ‘그래서?’라고 묻는 것 같았다.

“왕녀님께서 가끔, 당신이 마법을 봐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코비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겨우 힘을 내었다. 지금 하려는 말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의지가 훨씬 컸다.

“저도 당신께서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게도 스승이 있을 텐데.”
“그렇긴 하지만, 인간계의 방식보다 훨씬 자유롭게 힘들 구사하는 마족일 것을 알고 싶습니다.”

“‘자유롭다’라…. 인간의 기사가 마왕에게 배움을 청하다니. 재밌군.”

코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의 행동은 기사로써는 옳지 않은 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코비에겐 신성력과 마기가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을 운용하는 방법에는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배움의 출처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옳은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지였다. 지금 코비에게 닥친 난관은 이것뿐이었다.

‘저분이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잠시 말을 멈추던 미캉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빨리 배우려면 실전이지만…. 과연 네가 날 감당할 수 있을까?"

살기어린 미캉의 말에 코비는 온몸에 소름이 파사사 솟아났다. 얼마전의 전투가 생각났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주먹을 쥔 손에는 땀이 한가득이었다.

”...“

잠시 후 미캉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때 보았던 총 집사라는 마족이 나타났다.

”총사령관을 불러오도록.“

총 집사는 가볍게 묵례하고 다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에잉. 귀찮게 말이야. 왜 부르고 그래.“

론셰와 같이 온 마족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비며 어기적어기적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에 있는 웅장한 큰 뿔을 제외해도 순수 키가 3m는 거뜬히 넘는 듯한 거구에 코비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있던 미캉은 자신의 앞으로 오는 그를 잠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프 총사령관.“

”떼잉. 바쁜데 왜 부르고 그래. 손자 녀석이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면서 사고 친 거 수습하기도 바쁘다고. 엥? 웬 인간?“
”… 이 인간에게 훈련 시키도록.“
”엑? 내가? 왜?“

미캉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얼마 전에 당신의 손자 루피가 마신의 보물을 멋대로 가지고 놀다가 깨뜨렸더군.“

마왕의 입에서 나온 말에 가프는 턱이 바닥에 떨어질 기세로 입을 떡 벌리며 어떻게 알았지라는 생각을 숨길 생각도 없이 식은땀이 줄줄 흘렸다.

”그걸 내가 무마시켜 줄지도.“

그녀의 말에 차게 식었던 가프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그렇다면 말이 달라지지! 푸하하.“

가프가 코비의 뒷목을 잡아 올리자, 코비는 그대로 몸이 대롱대롱 허공에 띄워졌다. 그야 그는 167cm 정도밖에 안 되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근데 왜 마왕 당신이 안 하고, 날 시켜?“

미캉은 코비를 지그시 바라보곤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난 적당히 맞춰주는 걸 몰라.“

인간이 듣기엔 너무 작은 소리였지만, 오감이 인간보다 뛰어난 마족인 가프는 그녀의 말을 선명히 듣고 이해했다. 그 말속에는 ‘죽이진 말라’는 뜻이 내포된 것 또한, 가프는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푸하하. 너 이름이 뭐냐?“
”코, 코비…입니다.“
”몇백 년쯤 살았지만, 마왕을 백으로 두다니. 너 수완이 보통이 아닌데?“

웃는 얼굴이지만 선연히 떠오르는 살기에 코비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 괜찮은 걸까? 내일을 맞이할 수는 있겠지?’







마왕 성에 인간의 기사가 잔류가 허락된 그날. 총집사라는 마족이 안내해 준 숙소로 코비는 몸을 겨우 밀어 넣곤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하루 만에 오러가 성장해 버렸어.“

오러의 단계는 크게 익스퍼트,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 초월자 정도가 되는데 지금의 코비는 마스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가 오러을 발현했을 때. 임의의 색을 띤 다이아몬드 빛이 되어야 한다. 임의의 색은 사용자 영혼의 색이 반영되는 것이 보통이다.

”난 분홍색인가.“

코비는 자신의 분홍 머리카락을 잠시 꼬았다. 영혼의 색은 머리카락 색을 따라가는 건가? 라는 호기심이 들 때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코비는 황급히 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괜찮아요?“
”와, 왕녀님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금쯤 굉장히 기사님이 넝마가 되었을 거라고 마왕님이 말해줘서요. 저 치유계 마법은 꽤 자신 있거든요!“

루미나스의 말에 코비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안 그래도 이 몸으로 내일 훈련을 어떻게 견딜지 고민하고 있던 그였다.

”감사합니다.“

루미나스는 코비를 데리고 방에 있는 긴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두 손을 올렸다.

”세인트 힐링.“

코비는 금세 자신의 몸이 깨끗이 다 나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인트 힐링. 신성력과 마나를 합친 이 기술은 상대의 재생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다. 물론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와…. 몸이 단숨에 다 낫다니. 대단하세요.“
”감사해요. 하지만 전 마왕님처럼 물건까지 재생시키지 못하는걸요. 저도 그런 경지까지 가고 싶은데.“

 코비는 루미나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왕녀님.“

코비의 감사에 루미나스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입꼬리를 싱긋 올렸다. 코비는 주먹을 꽉 쥐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분명히 더 강해지면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겠지. 내일도 힘내자.’

.
.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arrow_upward